삶의 본때/황동규 어머님, 백 세 가까이 곁에 계시다 아버님 옆에 가 묻히시고 김치수, 오래 누워 앓다 경기도 변두리로 가 잠들고 아내, 벼르고 벼르다 동창들과 제주도에 갔다. 늦설거지 끝내고 구닥다리 가방처럼 혼자 던져져 있는 가을밤,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가 끝난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달도 없다. 마른 잎이 허공에 몸 던지는 기척뿐, 소리도 없다. 외로움과 아예 연 끊고 살지 못할 바엔 외로움에게 덜미 잡히지 않게 몇 발짝 앞서 걷거나 뒷골목으로 샐 수 있게 몇 걸음 뒤져 걷진 말자고 다짐하며 살아왔것다. 창밖으로 금 간 클랙슨 소리 하나 길게 지나가고 오토바이 하나 다급하게 달려가고 늦가을 밤 치고도 투명하게 고즈넉한 밤. 별말 없이 고개 기울이고 돌고 있는 지구 한 귀퉁이에 아무렇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