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1/10 2

물레가 구른다 / 김희숙

물레가 구른다 / 김희숙 흙꽃이 핀다. 손가락을 슬쩍 비트니 오므린 몽우리가 보시시 벌어진다. 흙 한 줌에서 생명력이 살아난다. 허공을 메울 잔가지나 바람에 하늘거릴 이파리 하나 돋지 못한 줄기지만 꼿꼿하게 버티고 섰다. 앞으로도 꽃송이 서너 개쯤은 거뜬히 피워낼 수 있으리라. 코끝을 간질거리는 향기와 눈길을 사로잡는 빛깔은 없어도 투박한 질감이 마음을 당긴다. 그릇은 오롯이 인간의 도구다. 사발에 김 오른 밥을 담고 종지의 짠기를 더해 밥심을 돋운다. 너나없는 콘크리트 삶 속에 작은 토분이나마 식물을 심어 자연을 벗한다. 연잎 화반에 꽃불을 켜 주위를 밝히고 달항아리를 들여 희로애락을 품는다. 때때로 사람은 스스로를 그릇에 담는다. 제멋대로 크기까지 정하여 정신을 가두는 오류도 범한다. 땅에서 생명이 ..

좋은 수필 2024.01.10

동바리, 천 년을 잇는다 /윤미영

동바리, 천 년을 잇는다 주초에 압착되어 간다. 균형을 잡아 보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짓누르는 무게에 굴복하고 마는 두리기둥. 사지의 힘줄은 이미 터져버렸고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다. 한 치 오차 없이 결구해야 한다. 어긋나면 천 년이 위태하다. 보경사寶鏡寺 대웅전이 푸른 하늘아래 시대의 미감을 드러낸다. 경상북도의 유형문화재인 사찰은 대덕 지명법사가 팔면경을 묻고 금당을 건립한 천년고찰이다. 팔작지붕의 기와와 외부 하중을 직접 받는 선자연의 날렵한 끝선이 받침목인 갈모산방(散防)에서 멎는다. 작도와 치목이 까다로워서 우리나라 전통건축에서만 볼 수 있다는 선자연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홀린 듯 눈을 떼지 못한다.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려면 희생이 뒤따른다. 대웅전 네 칸 기둥의 밑동이 세월의 격랑에 결이 갈라..

좋은 수필 2024.0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