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그 오래된 도서관/김영식 삐걱, 숲의 문을 떠밀면 꽃과 나무들이 수백만 권 푸른 장서가 된다. 산모롱이 돌아 오솔길 하나 고즈넉이 걸어오고, 어디선가 책장 넘기는 소리도 들려온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고마리며, 쑥방망이, 꽃향유들이 길가에 가지런히 피어있다. 새로 발간된 문고판처럼 귀엽고 앙증맞다. 어디 꽃들의 책뿐이랴! 박달나무, 층층나무, 굴참나무들이 온고지신溫故知新, 초록 위에 단풍을 덧얹고 산등성이에 고요히 펼쳐져 있다. 이때쯤이면 으레 늙은 사서司書가 내 앞에 나타난다. 이 숲의 사서는 오랜 지인이지만 그의 나이는 종내 가늠할 수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 숲에 살았다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세상 어디에도 있는 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는 나뿐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