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는 힘이 세다 외 김은옥 먼지는 뿌리가 깊다 버림받아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입김에도 가볍게 날아가지만 돌아와 제자리에 내려앉는다 눈짓만 해도 온몸을 들썩이다가 앉은 자리에서 천 년을 숨죽이기도 한다 오래 묵은 일기장 사이에서 눈물 자국으로 얽어 있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돋보기 위에 내려앉아 흐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눈 껌벅이며 돌아앉기도 하는 것이다 기쁘고 고운 날에는 낡은 성경책 갈피에 앉아 두 눈 붉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맑은 날 창가에 앉아서 보면 가닥가닥 집안 가득 뻗어 가는 먼지의 흰 뿌리들이 뼈처럼 드러나는 날도 있는 것이다 광인(狂人) 두 눈이 퀭하다 검은 외투 겹겹이 두르고 더벅머리 이마에서 재가 날릴 듯 아무도 어느 곳도 아니면 모든 것을 바라보는 방향을 전혀 알 수 없는 건널목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