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2/18 2

삼우 무렵 - 김사인

삼우 무렵 - 김사인 ​ ​ 서리태 한두홉을 냄비에 볶습니다. 서리태를 볶아 와 팔순의 아버지와 작은아들 나와 손녀아이가 둘러앉아 콩을 먹습니다. 어머니는 가시고 장맛비가 오는데 갓 올린 봉분 안부를 아무도 묻지 않고 오독오독 콩을 깨뭅니다. 콩그릇 곁으로 삼대가 둘러앉아 찧고 까부르는 테레비, 테레비만 멀거니 건너다봅니다. ​ ​ ​ ​ * 삼우제(三虞祭): 장사 마친 뒤 세 번째 날의 제사. ​ ​ ​ 하필 장맛비 오는 철이었나. 어머니 봉분은 무사한가, 아무도 묻지 않고 볶은 콩이나 깨문다. 낼 모레가 어머니 첫 기일(忌日)인데, 책 쓴다고 산골짜기에 박혀 있으니 내 처지도 딱하다. 남루하기가 굴 파고 들어앉은 들짐승 꼬락서니나 다름없다. 팔순 아버지와 딸이 있다면 서리태 한두 홉 볶아 오독오독 깨..

좋은 시 2024.02.18

누룽지/정경해

누룽지/정경해 삶이 누룽지 같을 때가 있다 이제 막다른 길이라며 솥을 껴안고 바짝 눌러 붙어 떼를 쓰는 누룽지 같은 으르고 달래고 속을 박박 긁어 봐도 제 말이 옳다 우기는 홧김에 푸념 가득 물 한 바가지 확 끼얹으면 눈물 퉁퉁 반성하며 마음 풀고 일어서는 때로는 모진 삶이 미워 등짝 한번 갈기고 싶지만 돌이켜 보면 구수한 날이 더 많았던 게 삶이다

좋은 시 2024.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