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4/02/28 2

멍석 - 정성록

멍석 - 정성록 봄의 전령사들이 남도의 이른 봄소식을 들려준다. 오백 년 된 황매화의 향기를 맡으며 꽃들의 이야기에 귀를 모아본다. 청량한 물소리가 흐르는 지리산 한 자락을 살포시 끼고 앉은 경남 산청군 남사면 예담촌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가장 아른다운 마을 1호로 선정될 만큼 고택들과 주변 경관이 조화롭다. 돌담을 타고 기어오르는 담쟁이 넝쿨따라 골목을 돌아 깨끗한 양반가의 고택을 둘러본다. ​ 바람이 빈 집의 주인인 냥 우리를 맞이한다. 어릴 적 살았던 내 고향집 같은 어느 고택에서 나도 몰래 발이 붙어버렸다. 빗장 걸린 안채를 비켜 바깥마당으로 나오다 발길을 멈추게 한 것은 초가로 된 사랑채 헛간에 있는 멍석이었다. 먼지 쌓인 멍석에서 아버지의 냄새가 폴폴 날아 오르고 나를 고향집 헛간으로 데리고 ..

좋은 수필 2024.02.28

접는다는 것/권상진

접는다는 것 ​ 권상진 ​ ​ 읽던 책을 쉬어 갈 때 페이지를 반듯하게 접는 버릇이 있다 접혀진 자국이 경계같이 선명하다 ​ 한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서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좋은 시 2024.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