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이꾼과 저격수 - 문혜진 돌능금나무 둥치 세 들어 살고 싶다던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 고여 있어, 그 목소리는 바다에 내리는 눈, 얼음집 내벽 녹았다 다시 얼어붙은 물방울, 너는 잠시 빛나고, 나는 적막을 품고, 허기의 기록들이 마침내 느슨하게 흐르고, 달빛의 윤곽 너머 안개 낀 밤의 아늑한 사라짐들, 반역들, 불분명한 용서들 우리는 서로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겨냥하는 자와 숨는 자, 서로의 지형도를 숨긴 채, 표적을 향해 달려들지만 대열은 흩어지고, 표적은 간 곳 없고, 게릴라성 호우와 수치심에 대해, 먼 훗날 빙하에 갇힌 채 얼어버린 심장을 뚫고, 내 사랑의 저격을 완성시킬 수 있을까! - 문혜진 시집 《혜성의 냄새》, 2017 〈몰이꾼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