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그릇 / 배종팔 옛것이라 손을 타면 쉬이 깨질까 싶어 찬장 깊숙이 묵혀 둔 것이 잘못이었다. 아내가 며칠 집을 비운 사이, 설거지가 귀찮아 찬장의 그릇을 죄다 꺼내 썼다. 티끌만한 생채기도 큰 흠집이 되는 데 그릇만한 게 있을까. 내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마냥 쓰리고 아팠다. 하지만 찬장 한켠에 갇혀 딸아이에게 대물림될 뻔한 그릇이 세상 밖으로 나와 한 식구가 된 것을 위안으로 삼는다. 아이 손 한 뼘 정도의 아가리에 굽이 짧고 허리가 배흘림인, 국수집에나 있음직한 그 질그릇은 이제 다른 그릇과 나란히 찬장에 자리 잡고 있다.거죽이 거무튀튀하고 모양마저 볼품없는, 골동품으로도 실생활 용기로도 쓰기에 어중간한 저 막사발을 아내의 외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또 아내에게 어떤 의미로 물려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