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의 자서전/장미숙 메마른 대지를 손으로 쓸어내리자 까슬하게 뭉친 세월이 잡힌다. 물기가 말라버린 딱딱한 표면, 탄력도 윤기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고난이 할퀴고 간 상처가 곳곳에 유적처럼 자리 잡은 대지 위로 90년 날들이 유구하다. 중심을 가로지르는 산맥은 이미 휘어지고 굳어서 지형마저 바꿔놓았다. 융기한 뼈를 사이에 두고 대지는 굴곡의 세월을 그러안은 채 동그랗게 말려 있다. 손에 닿자마자 싸한 아픔을 몰고 오는 건 한 사람의 일대기이다. 좁은 대지가 수십 권의 책이 되어 기나긴 서사를 전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색과 활자가 달라진다. 어둠이 깃든 페이지 속에 글자들이 방황한다. 대지를 덮은 침울한 색, 흐릿한 글자들의 뒤엉킴은 혼돈의 날들을 전하며 페이지마다 주석이 빼곡하다. 세월이 견고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