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것은 굴러야 한다 / 최장순 바람 빠진 바퀴만큼이나 바람 빠진 오후다. 생기 돌던 시간은 어느새 네 시를 향해 절뚝거린다. 마구 달려가고 싶은데 소진된 기운은 좀체 굴러가려 하지 않는다. 봄날의 나른함이다. 바람 가르던 눈부심이 저만큼 사라졌다. 먼지 앉은 자전거들이 적막하다. 값나가는 자전거들은 아파트 현관 안에 모셔두지만 아파트 출입구 보관대에서 묵묵히 주인을 기다리다 지친 자전거들. 내달리지 못할 때 자전거는 자전거가 아니다. 길은 영영 사라진 듯 보인다. 보다 못한 관리실이 처분하겠다는 안내장을 걸어도 요지부동이더니 어느 날 일제히 자취를 감췄다. 스스로 굴러간 것이 아니라 폐기처분된 것이다. 자전거 페달에 겨우 발끝이 닿은 내가 균형을 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모든 ‘첫’은 긴장과 위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