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궁핍/마경덕 텅 빈 잔고를 보듯 쓸쓸한 때가 있었다. 그것은 만지면 까맣게 묻어나는 내 삶의 그을음이었다. 바닥 중에도 가장 낮은 밑바닥이 있듯이 궁핍 중에서도 가장 낮은 궁핍이었다. 가난에 익숙했으므로 우리는 아무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늘 만나는 저녁노을 같은 것이었다. 금세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던 가난, 철없어서 오히려 가벼웠던 가난, 하지만 잠시 사라진 가난은 노을처럼 다시 찾아왔다. 침몰하는 하루, 추락이 빤한 내일, 노을의 끝은 어둠이었다. 그 막막한 시간을 어머니가 있어 견딜 수 있었다. 아홉 명의 자식들, 끼니마다 아귀처럼 먹어치우던 그 식욕을 어머니가 다 감당하셨다. 상자에 보관한 고구마가 싹을 내밀었다. 참을 수 있는 시간은 다 써버린 것이다. 자줏빛 잎은 고사리처럼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