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소리만, 그저 다만 발소리만이라도 /최명희
발소리만, 그저 다만 발소리만이라도 /최명희 무엇 하러 달은 저리 밝을까.섬뜩하도록 푸른 서슬이 마당 가득 차갑게 깔린 달빛을 밟고 선 채로, 아까부터 망연히 천공(天空)을 올려다보던 강실이는, 두 손을 모두어 잡으며 한숨을 삼킨다.마치 숨도 살도 없는 흰 그림자처럼 서 있는 강실이의 머릿단에 달빛이 검푸르게 미끄러지며, 그네의 등뒤에 차가운 그림자로 눕는다.사립문간에 선 살구나무도 제 그림자를 땅에 드리운 채, 구부듬한 검은 둥치 검은 가지를 겨울 한공(寒空)으로 뻗치고 서서, 빙무(氷霧) 같은 달빛을 전신에 받고 있었다.눈(雪)도 없는 극한(極寒)의 밤에, 들여다보기 무서우리 만큼 깊고 검푸른 거울이, 티 하나 없이 말갛게 씻기워 상공에 걸린 겨울밤 하늘, 그 가슴 한복판에 얼음으로 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