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금(砂金) 한 조각 이귀복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지하철에서 내려 천천히 계단을 밟아 오르자 투명한 가을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머리는 혼란스러웠고, 무언지 모를 죄책감에 햇빛조차 싫어졌다. ‘그래, 어젯밤 나는 외박을 했어. 외박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자가 당당할 수가 없지.’자괴감에 빠져 땅만 내려다보며 걷고 있는데 어젯밤 통화에서 따지고 들던 딸아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계획된 일이 아닌데, 어떻게 엄마가 외박을 할 수 있어요?”맞다. 나는 엄마다. 엄마가 외박을 했으니 고통스러워야 당연하지. 자조하듯 내뱉는 혼잣말이 소태처럼 쓰다. 누가 뭐래도 오늘 밤은 자고 가겠노라고 가족에게 호기롭게 통고하던 결기(決氣)는 어디로 가고 집이 가까울수록 자꾸만 움츠러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