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김애자 임금과 하룻밤을 지낸 소화라는 후궁의 기다림이 꽃이 되었다는 능소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옛날에는 양반집에만 심는 귀한 꽃이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 출처도 분명치 않은 능소화 한 그루가 대문 옆에서 똬리를 틀더니 곁눈 한번 주지 않는 향나무 허리를 뱀처럼 휘감는다. 목걸이를 한 암캐의 부러움을 딛고 하늘을 감을 태세로 올라가는 줄기마다 처녀의 볼기짝 만한 꽃잎이 요염하게 웃는다. 6월이 되면 능소화와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집 안에서 얌전히 피라고 줄기를 담장 안으로 옮겨 놓으면 잽싸게 문밖으로 나가 서성거린다. 까치발로 목을 빼고 누군가 하염없이 기다리다 소리 없이 떨어진다. 한 여름의 태양을 이고 의기양양하게 떨치는 능소화의 화려함은 여인네의 치마 속까지 무단횡단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