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황 진 숙 보이지 않는 마음 한 자락을 꽃 피운다. 잡다함을 지우고 민낯으로 몰입되어 있는 진지함이다. 마음자리에서 길어 올린 사유가 단단한 몸을 뚫고 나오기까지 얼마나 몰두해 있었던 걸까. 결가부좌를 튼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무가 있다. 시골에서 올라온 무는 낯을 틀 새도 없이 베란다 구석에 방치됐다. 침묵이 살에 스며들고 적막이 몸피를 감싸자 무는 새순을 틔웠다. 한 모금의 햇볕도 없는 곳에서 무는 제 몸을 뿌리 삼아 싹을 밀어 올렸다. 관심 가져주는 이 없이 홀로 핀 싹은 여기가 제 집이라도 되는 양 낭창한 기운을 내비쳤다. 너른 밭의 배경이 됐던 지난날의 평화로움이나 계절의 기운을 새기며 열매 맺기를 기대했던 간절함이 연둣빛 줄기가 되어 한 잎 한 잎 잎사귀를 돋았다. 얼마 후 베란다에서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