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듯 겹쳐지면서/황진숙 해가 스러지자 어스름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도시의 얼굴마담인 전광판은 허공으로 쉴 새 없이 자막을 흘려보낸다. 뒤늦게 도로를 건너는 이들에게 신호등은 경보음을 울리며 야멸차게 채근한다. 바닥은 개업을 알리는 전단지로 포장되어 낯빛을 알아볼 수 없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호객을 위한 상인의 목청소리,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뒤섞여 소란하게 들끓는다. 네온사인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자 터미널을 찾아가는 내 발걸음이 분주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만치 오가는 행인들 사이로 스티로폼 상자 앞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할머니가 눈에 들어온다. 길가 한구석에 플라스틱 바가지 네댓 개를 펼쳐놓은 채, 강마른 손으로 마늘을 까고 있는 모습이 생경하다. 한 평의 공간도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