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방 심선경 퓨즈가 나간 방은 삽시간에 어두운 숲이 된다. 고사목 덩치처럼 벽 한쪽으로 길게 누운 소파에 얼른 올라앉아 고개를 조아리는 내 모습은 수풀 더미 아래로 황급히 몸을 숨긴 채 웅크린 작은 산짐승의 형상이랄까. 길이란 길은 모두 지워지고 숲을 점령한 어둠에 항거하는 것은 푸르디푸른 잎새를 기억하는 단단한 그리움들뿐이다. 때로는 바람과 몸을 섞은 나무들 서넛, 그 흔적을 애써 잊으려는 듯 고개를 떨군다. 지난가을, 창밖에서 활활 불타던 단풍나무는 참다못해 그 열기를 몸 밖으로 마구 뿜어내었다. 하지만 사랑의 흔적을 아무도 죄라고 나무라지는 않았다. 가을 나무들이 잎새를 빨갛게, 혹은 샛노랗게 물들이는 것은 그리움의 상처를 감추기 위한 그들만의 위장술인지도 모른다. 낡은 퓨즈가 끊어져 버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