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1954 - ) ‘김치찌개 평화론’ 김치찌개 하나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식구들의 모습 속에는 하루의 피곤과 침침한 불빛을 넘어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힘 같은 것이 들어 있다 실한 비계 한 점 아들의 숟가락에 올려 주며 야근 준비는 다 되었니 어머니가 묻고 아버지가 고춧잎을 닮은 딸아이에게 오늘 학교에서 뭘 배웠지 그렇게 얘기할 때 이 따뜻하고 푹신한 서정의 힘 앞에서 어둠은 우리들의 마음과 함께 흔들린다 이 소박한 한국의 저녁 시간이 우리는 좋다 거기에는 부패와 좌절과 거짓 화해와 광란하는 십자가와 덥석몰이를 당한 이웃의 신음이 없다 38선도 DMZ도 사령관도 친일파도 염병할, 시래기 한 가닥만 못한 이데올로기의 끝없는 포성도 없다 식탁 위에 시든 김치 고추무릅 동치미 대접 하나 식구들은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