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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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 - 이정록

홍어 - 이정록​​욕쟁이 목포홍어집마흔 넘은 큰아들골수암 나이만도 십사 년이다양쪽다리 세 번 톱질했다새우 눈으로 웃는다​개업한 지 이십팔 년막걸리는 끓어오르고 홍어는 삭는다부글부글,을 벌써 배웅한할매는 곰삭은 젓갈이다​겨우 세 번 갔을 뿐인데단골 내 남자 왔다고 홍어 좆을 내온다남세스럽게, 잠자리에 이만한 게 없다며꽃잎 한 점 넣어준다​서른여섯 뜨건 젖가슴에동사한 신랑 묻은 뒤로는밤늦도록 홍어 좆만 주물럭거렸다고만만한 게 홍어 좆밖에 없었다고얼음막걸리를 젓는다​얼어 죽은 남편과 아픈 큰애와박복한 이년을 합치면,그게 바로 내 인생의 삼합이라고소주병을 차고 곁에 앉는다​우리 집 큰놈은 이제쓸모도 없는 좆만 남았다고두 다리보다도 그게 더 길다고막걸리거품처럼 웃는다​

좋은 시 2024.06.09

고등어의 골목 / 이종진

고등어의 골목 / 이종진 저녁 찬거리는 고등어였다살아온 날 만큼이나 무뎌진 식칼이고등어의 푸른 등줄기를 몇 차례 내려치고토막토막 나면서 오븐렌지 속에 들어가자고등어는 결국 바다에서의 푸른 생을 끝냈다 한때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으리식솔들을 이끌고 바다의 이 골목 저 골목으로밥을 찾아 끝없이 유영했으리가끔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우연찮은 골목의 끝을 지나배고픔을 달래며 다시 되돌아온 적도 있었으리 오늘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은 참으로 길었다골목마다 끝없이 출렁거리는 바다 물결에 밀려얼마 만큼인지 흘러가고 나서야 나의 서투른귀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 저녁은 모처럼 고등어 찜을 해먹자며푸릇푸릇한 등줄기를 토막 내며새 칼을 하나 사든지 아니면 숫돌에서 갈아야 한다며무뎌진 식칼을 아내가 내 앞에 쓰윽 내밀자난..

좋은 시 2024.06.09

막장 시

막장 / 김나영​ 폐광이 태백이나 정선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리부도에는 삭제되어 있는 없는 게 없는, 서울특별시에도 폐광이 있다. 단돈 850원이면 몇 시간 안에 도착하는​ 이곳을 접근금지 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사람들과 뜨거운 밥 퍼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몇 년째 대안 없이 불거지고 가끔 아이의 두 눈을 치마폭으로 가린 풍경이 빠져나가고 나면​ 잠시 술렁거렸던 공기가 다시 흑연 가루처럼 가라앉는​ 이곳에 갱도(坑道)나 채탄(採炭)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데 그들의 외투와 손과 신발이 검은 때로 반질반질하다. 햇빛도 그들의 몸에 닿자 순식간에 빛을 잃어버리고 희망이 차단된, 가느다란 빛도 새어나오지 않는​ 두 개의 막막한 구멍들과 나는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영등포역 고가다리 아래, 서울역 주변이 아니더라도 기..

좋은 시 2024.06.06

격포

격포 / 고운기​격포라 찾아왔네 십년 만이든가來蘇寺 단풍 곱기도 했는데철없던 계집애들 여관집 밥 먹고차 한 잔 마신다고 몰려갔던 다방사람 드문 바닷가 거기 정담다방나이 든 여자 하나 하품만 하고 있었지십년 세월 깜박했네 어느새든가來蘇寺 단풍 아직 철 이른데어디였는지 정담다방 찾을 길 없고정답던 얘기만 허공 중에 떴겠구나콩국수 말아 먹는 여자 하나입에 든 것 삼키지도 않고“없어졌제라, 칠 년도 넘괐그만그 동안 한 번도 안 왔다요…….”서둘러 자리 뜨는 뒤통수만 가려웠다네.​- 고운기,『섬강 그늘』(고려원, 1995)​​​​격포 / 송유미​​미선나무 등걸에 기대어 속을 다 뒤집고 가는파랑주의보, 허리가 휜 뒷모습 바라본다.양철구름은 나뭇가지에 걸려 뒤뚱거린다.방파제 뒤웅박 안에 든 촛불은 시나브로 혼을 태운..

좋은 시 2024.06.06

서경과 서정의 심장을 녹이는 연륜의 시

서경과 서정의 심장을 녹이는 연륜의 시   김정순 시집 『불면은 적막보다 깊다』(작가마을) 배재경(시인)  김정순 시인이 오랜 침묵을 깨고 두 번 째 시집을 펴냈다. 1990년 《시와비평》으로 등단한 뒤 이제 두 번째 시집이라니, 30여년에 가까운 시력임을 감안해본다면 이는 분명 과작임에 틀림없다. 아니면 발표 시들을 무결점의 작품들로 채우려는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의 작품들이 과작에 비하여 정체되거나 침체된 작품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통 지나친 과작의 경우 자기세계를 확보하지 못해 시력에 비하여 2%가 부족한듯한 느낌이 짙다. 그러나 김정순의 시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발표는 더디지만 시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이번 시집 『불면은 적막보..

평론 2024.06.05

골목과 노을과 곡선과 구석의 시인

골목과 노을과 곡선과 구석의 시인- 권상진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 김대호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  장인수(시인)    권상진 시인의 두 번째 시집 『노을 쪽에서 온 사람』은 골목을 노래하고, 노을을 노래하고, 별을 노래한다. 권상진 시인은 골목의 시인이며, 노을의 시인이며, 별의 시인이다. 반면 김대호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실천이란 무엇입니까』는 곡선을 노래하고, 자연산 밥 냄새를 그리워하고, 구석을 노래하고, 추풍령 근처 신암을 노래한다. 김대호 시인은 곡선의 시인이며, 구석의 시인이다. 두 시집은 공통점보다는 개별적인 개성이 더 강해서 따로 감상을 해 보도록 한다. 둘 다 두 번째 시집이다. ▪골목을 노래하는 골목의 시인 향이 심심해 장미 몇 송이 심었습니다소고기나 한 근 끊는다는 것..

평론 2024.06.05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김훈

여자의 풍경, 시간의 풍경/김훈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난다. 이것은 불가피하다. 사쿠라꽃 피면 여자 생각에 쩔쩔맨다.어느 해 4월 벚꽃 핀 전군가도全群街道(전주-군산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다가, 꽃잎 쏟아져 내리는 벚나무 둥치 밑에 자전거를 세워놓고, 나는 내 열려지는 관능에 진저리를 치면서 길가 나무둥치에 기대앉아 있었다. 나는 내 몸을 아주 작게 옹크리고 쩔쩔매었다. 온 천지에 꽃잎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무둥치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라보면, 만경 평야의 넓은 들판과 집들과 인간의 수고로운 노동이 쏟아져 내리는 꽃잎 사이로 점점이 흩어져 아득히 소멸되어 가고, 삶과 세계의 윤곽은 흔들리면서 풀어지면서, 박모의 산등성이처럼 지워져 가는 것이었는데, 세상의 흔적들이 지워져 버린 새로운 들판의 지평..

좋은 수필 2024.06.04

라면을 끓이며/김훈

라면을 끓이며/김훈 1 사실, 이 글은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끓이고 또 먹어온 나의 라면 조리법을 소개하려고 시작했는데, 도입부가 너무 길어졌다. 이제부터가 본론이다.라면 포장지에는 끓는 물에 면과 분말스프를 넣고 나서 4분 30초 정도 더 끓이라고 적혀 있지만, 나는 센 불로 3분 이내에 끓여낸다. 가정에서 쓰는 도시가스로는 어렵고 야외용 휘발류 버너의 불꽃을 최대한으로 크게 해서 끓이면 면발이 불지 않고 탱탱한 탄력을 유지한다. 면이 불으면 국물이 투박하고 걸쭉해져서 면뿐 아니라 국물까지 망친다.또 물은 550ml(3컵) 정도를 끓이라고 포장지에 적혀 있지만, 나는 700ml(4컵) 정도를 끓인다. 물이 넉넉해야 라면이 편하게 끓는다. 라면이 끓을 때 면발이 서로 엉기지 않아야 하는데, 물이 넉넉하..

좋은 수필 2024.06.04

햇과부/ 한인자

햇과부/ 한인자 "햇과부, 어서 오셔.""??"황당한 호칭에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못 알아들은 줄 알고 거듭 말한다."햇과부, 어서 오시라고.""햇과부요?""그렇지. 너는 햇과부, 우리는 묵은과부."남편이 떠나고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가까운 두 선배가 맛있는 밥 먹자며 만나자고 했다. 약속 장소는 럭셔리한 고급 레스토랑이었다.​한껏 멋을 낸 선배들이 우아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축 늘어져 들어오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큰소리로 해맑게 "햇과부'라고 불렀다. 선배들의 진정한 위로에 울컥했다.​다른 사람이 그렇게 부를까 겁나는 이름 '과부'를 두 선배는 거침없이 막 부른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나를 웃기겠다고 민망한 이름을 들석이며 고육지책을 쓰는 선배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나도 모르게..

좋은 수필 2024.05.31

가난한 벽/ 전미란

가난한 벽/ 전미란 벽은 소리를 막아내지 못했다. 섬마을 학교사택은 여러 개의 방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었다. 슬래브 지붕에 구멍 숭숭 뚫린 벽돌로 칸만 쳐져있었는데 칸칸이 나누어진 허름한 벽은 많은 말을 해주었다. ​소리는 밤이 깊을수록 커졌고 나는 예민해져갔다. 밤마다 부르릉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옆방 남자의 코 고는 소리, 기침소리, 방귀소리 할 것 없이 벽을 넘나들었다. 심지어는 몇 시에 일어나는지, 티브이 드라마는 뭘 보는지, 잠들기까지 무엇을 하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사택은 보일러실을 부엌으로 썼다. 헐거운 문틈으로 들쥐가 드나들고, 비가 오면 지렁이들이 바닥을 기어 다녔다. 교실 헌 책상을 붙여 그릇을 올리고 빨간 고무통에 물을 받아 바가지로 떠서 설거지를 했다. 벌 받듯이 쪼..

좋은 수필 2024.05.31

막차/허정진

막차/허정진 직장 생활을 하던 젊은 시절에는 늦은 밤 귀가하는 날이 많았다. 회사 일이 늦거나, 동료와 술 한잔하느라 부랴부랴 막차를 타곤 했다. 막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어딘가 서로 닮아있었다. 고개를 숙였거나 초점 없는 표정으로 차창 밖을 내다보거나, 하나같이 피로에 지치고 어딘지 모르게 삶의 쓸쓸함이 묻어났다. 아무래도 막차라는 심리적 배경이 밥벌이의 고단함이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더욱 부추기는 것 같았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보다 막차를 타야만 하는 생에 대한 애환과 번뇌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속울음을 삼키며 누군가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삶을 알려면 막차를 타보라는 말도 그래서일 것이다.​‘막차를 탄다.’라는 말이 있다. 뒤늦게 뛰어들거나..

좋은 수필 2024.05.30

냉이 대첩 / 이현영

냉이 대첩 / 이현영 ​ 이월이 다가올 즈음 냉이 생각이 자꾸 났다. 한적한 들판에서 냉이를 실컷 캐고 싶은 마음에 조바심이 일었다. 어디에나 있는 듯해도 막상 찾으려면 좀처럼 안 보이는 게 쑥이나 냉이 같은 푸성귀다. 도시 외곽에 사는 지인에게 냉이가 올라오냐고 물었더니 반응이 시큰둥했다. 농사짓는 이웃 쪽 상황도 비슷했다. 냉이 캐기는 꽃대가 올라오면 끝난다. 몇 해 전, 모처럼 찾아간 들판은 절반 넘게 냉이꽃으로 바뀐 터라 재미를 못 보고 돌아왔었다.​ 이월로 접어든 첫 휴일 오후, 남편은 연일 냉이 타령인 아내 입을 막으려는 속셈인지 냉이를 캐러 가자고 먼저 말을 붙였다. 집에 있으니 갑갑한 마음에 바람 쐬러 가자는 말이겠지 싶어 따라나섰다. 그러면서 칼이며 큰 봉지까지 챙겨 든 마음은 뭘까. 운..

좋은 수필 2024.05.28

바림, 스며들다 / 김정화

바림, 스며들다 / 김정화 ​ 양홍에 수감을 섞어 붓끝에 찍는다. 소복한 꽃잎 안쪽, 검붉은 물감이 미리 내놓은 물길을 따라 번진다. 적당한 수분을 머금은 바림붓이 부드럽고 섬세한 움직임으로 물감의 번짐을 돕는다. 서서히 농도를 달리한 색들이 꽃잎에 스민다. 온 세상을 집어삼킨 코로나바이러스는 병상에 누운 어머니의 의지를 꺾어버렸다. 면회가 금지되고 주말마다 찾아오던 자식들을 보지 못하게 되자 시름시름 앓다 급기야 식사를 거부했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기 싫다고 스스로 요양병원 입원을 결정할 정도로 강단 있던 분이었다. 영양주사를 투여하며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면회는 여전히 불가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홀로 계신 시어머니가 마당으로 나뒹굴어 다쳤다는 연락이 왔다. 얼굴이 긁히고, 정..

좋은 수필 2024.05.28

외딴집 / 조현미

외딴집 / 조현미  호박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그 집이 있던 자리에, 노을이 짙게 비낀 꽃은 붉다. 꼭 조등弔燈 같다.천생이 직립과는 먼 넝쿨에게 콘크리트 담벼락은 숙주가 되기엔 여러모로 옹색해 보인다. 어쩌다 수라修羅같은 콘크리트 틈새에 뿌리를 내렸을까. 갈지자로 굽은 그루가 영락없는 골절의 흔적인데 크낙한 잎사귀 사이 애호박을 조랑조랑 달고 있다.넝쿨의 여정 말미엔 넝쿨손이 바랑 하나 걸머메고 있다. 한 모금의 햇살과 바람, 한 치의 행로를 향한 저 가없는 탁발, 빈손이 못내 안쓰럽다.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식물에게나 삶은 어차피 구도求道의 연장선상이 아니겠는가.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으나 늘 위태위태한 넝쿨의 처소를 보면 운명이란 신이 정해주는 것도 아니지 싶다.그 집을 처음 본 건 십여 년 전 ..

좋은 수필 2024.05.27

복어​/ 박은영

복어​/ 박은영        독종 소리를 들었다​   너 죽고 나 죽자 아무리 두들겨 맞아도 죽지 않았다   공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려져도 꾹꾹 울음을 참고 몸뚱이를 굴러먹었다   왜 사니?   독한 말을 씹어 넘길 때면 헛배가 불렀다   슬픔을 가리는 위장술,   내성과 독성의 굴레에서 독한 년, 욕을 배불리 먹고 천하게 굴러다녔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만큼   나는 독기를 빼면 시체였다  투구꽃과 청산가리보다 한 수 위인 선대의 독 가哥들이 그랬듯   이를 악물고 살았다   살다 보니  그 많은 천적이 멸종되고 없었다

좋은 시 2024.05.27

문명 / 박일만

문명 / 박일만  아파트 창문 너머 하늘이 사라졌다공간을 채우며 빌딩이 점령했다콘크리트로 덮이고 구름은 더 높은 곳을 찾아 떠났다언뜻 보이던 햇빛도 장막 속으로 사라졌다저 높은 건물 속에서사람들은 공중 부양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틈새에 끼인 키 낮은 초등학교가 숨을 헐떡인다아이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콩나물처럼 자라 이 나라의 일꾼으로 나아갈 것이므로 어른들은 서슴없이 광장을 메꿨다메꿔진 하늘새 한 마리 날지 못하고 매미 한 마리 찾아오지 않는 마천루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지은 날개를 차려 입고가끔은 새처럼, 가끔은 매미처럼엘리베이터에 붙어 소리 지를 것이다인간의 세상은 사라지고 콘크리트 몸집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나타난 일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치부되었을 뿐오고갈 길이 막힌 바람이벽에 부딪치며 세찬 소리로 ..

좋은 시 2024.05.26

바겐세일 / 박일만

바겐세일 / 박일만  서둘러 챙겨 입고 첫차에 오른다모닥불이 혓바닥을 날름대는 곳추레한 행색으로 빙 둘러 도열한다그 거리의 모퉁이드럼통을 달군 불이 얼굴을 익힌다큰 과일, 작은 과일, 건장한 과일풋과일, 익은 과일, 삭아가는 과일저마다 모양새를 조건삼아 진열된다최선을 다해 단내를 풍겨야 선택되는 생들봉고차가 다가와 손가락 호명하는 잠깐 사이동으로, 서으로, 남으로, 북으로일당 몇 만원! 중식제공! 줄 맞춰 저렴하게 몸 팔러 간다그들이 사라진 후 덩그러니 남은 잔챙이들서리 맞은 낙과처럼 추락을 맛본다그마저도 허기가 진다북새통이 지나가고 바람만 휘도는 거리 모퉁이선택받지 못한 생들은 또다시 쪽방으로 처박힐 것이다뒤늦게 도착한 생들 저희끼리 모여온기 사그라드는 드럼통을 껴안고두 손을 함께 구워 먹는다

좋은 시 2024.05.26

고자바리 / 최원현

고자바리 / 최원현   할머니는 늘 왼손을 허리 뒤춤에 댄 체 오른손만 저으며 걷곤 하셨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앉았다 일어나려면 ‘아고고고’ 하시며 허리가 아픈 증상을 아주 많이 호소하셨고 길을 가다가도 한참씩 걸음을 멈추곤 허리를 펴며 받치고 있던 왼손으로 허리를 툭툭 치다가 다시 가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허리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더 구부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걸 바라보는 어린 내 마음은 더욱 편치 않았다.할아버지는 하얀 수염으로 늙음이 나타났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허리가 굽어지는 걸로 나타났다. 기역자처럼 거의 직각으로 굽어진 허리를 똑바로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서글퍼지고 안타깝고 민망했다.오랜만에 뒷산엘 올랐다. 그새 나무계단이 하나 더 생겼고 오르는..

좋은 수필 2024.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