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인(黙認) / 정재순 자정이 넘었다. 남자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냈으나 역시 묵묵부답이라 재차 발신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 저쪽은 적막강산처럼 고요했다. 곧 도착한다며 서둘러 끊으려는 찰라, 낯선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새벽 한 시쯤 현관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술을 마셨다고 하기엔 그다지 취한 기색이 없었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 확 밀려왔다. 스무 일곱 해를 동거하면서 이런 묘한 기분은 처음이다. 색안경을 끼고 봐서일까, 움직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어색했다. 술에 취해 들어올 때면 남자의 버릇은 아이들 방부터 찾았다. 곤히 잠든 애들을 껴안고 소란을 피우는 통에 골목이 들썩거렸다. 뿐이 아니다.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달랐다. 집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