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지폐 / 이성환 빳빳한 기개는 어디에도 없다. 남루하고 꾀죄죄한 행색만 남았다. 표면은 누렇게 땟국물이 절었다. 주름살투성이에다 악취까지 풍긴다. 몸피는 군데군데 해져 초췌한 몰골이지만, 그나마 오른쪽 초상화 얼굴 윤곽은 변함없다. 제 몫을 다하고 떠날 준비를 마친 자의 처연함이 노골적이다. 한 줌 재가 될 화폐들이 금고 구석에 차곡차곡 쌓였다. 은행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지폐 다발을 풀어 훼손된 화폐를 분류하고 세고 묶었다. 무더기로 쌓인 지폐 앞에 전 직원이 달라붙었다. 재사용할 돈과 수명이 다 된 지전을 구분해야 하는 일. 책상 위는 물론 바닥에 종이도 아닌 것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돈을 셀 때마다 뽀얀 먼지가 날리고 역한 냄새가 났다. 빨리 일을 마치고 퇴근하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