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문서 / 성영희 한겨울에만 자라는 뿌리가 있다 물결무늬 고랑 끝에서 자라나는 투명한 뿌리들 뚝 떼어서 와작 씹으면 이만 시리던, 뿌리가 부실한 사내애들은 곧잘 겨루기를 했다 손 한 번 베지 못한 그 맑은 칼싸움으로부터 쨍그랑 잘려나가기도 하던 긴 겨울 처마 끝에서 자라는 고드름은 뿌리열매다 씨앗 하나 심을 땅 없는 가난한 양철지붕의 겨울 수확 잠깐의 햇살에도 툭 끊어지고 마는 가늘디가는 한철 농사다 고드름도 잘 자라지 못하는 북향집 실로폰 같은 뿌리들이 똑똑 물방울을 떨군다 꽃 밑으로 뻗어나가는 뿌리 대신 처마 끝에서 고작, 도돌이표로 돌아가는 가난한 음계들 겨울이 흘러내리고 있다 한여름 땅속 열기들이 뿌리 끝으로 빠져나간 흔적처럼 처마 아래 봄을 파종하고 있다 이 뿌리로 겨울을 났다는 소리는 듣지 ..